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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IN CHOI

© Banzakbanzak Production / Castaway on the Moon (2009)

When 'HELP' Becomes 'HELLO'

김씨가 세상 살만해지는 찰나

어느 ‘김씨’가 한강에 몸을 던졌다. 빚은 산더미인데 회사에서는 잘렸고, 사회생활에 찌들을 대로 찌들었다. (마치 꼭 짜서 쭈글쭈글한 무말랭이 같달까?) 살아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살아가는 방법도 모르겠다. 무말랭이가 살기에는 너무 각박한 세상이다.


그런데 개탄스럽게도, 죽는 것마저 쉽지가 않다. 죽기는커녕, 김씨는 한강에 있는 어느 무인도에 표류된다. 여러 번 탈출을 시도하지만 수포가 된다. 그의 신고 전화를 받은 구급요원은 장난 전화로 치부하고, 헤엄이라도 쳐보지만 체력은 저질이고… 비겁한 인간은 다시 한번 죽음을 택하려 목을 매달지만, 그 순간, 그의 본능이 그를 살린다. 아, 배고파.


한 여자가 스스로 자신을 방 안에 가뒀다. 가상의 세상(인터넷)에서 남을 염탐하고, 겉보기에 꽤 그럴싸한 삶을 꾸며내 자기기인한다. 함께 사는 엄마의 얼굴을 본 지는 오래다. (간간이 필요한 것들만 휴대폰 문자를 통해 부탁할 뿐.) 그녀가 온전히 자신으로써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단 하나의 창구는 그녀의 망원경이다. 달을 탐하고, 사진으로 담는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달처럼 버려진 한강의 무인도에 누군가가 터를 짓기 시작했다. 물고기와 철새를 잡는 요상한 남자. 새똥을 모아, 짜장면을 만들어 먹겠다는 황당한 발상을 하는 저 요상한 남자. 궁금하다.


‘인간들은 바다를 떠다니는 섬 같다.’

- 윌리엄 제임스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나 홀로 고립된 느낌이 휘몰아치는 순간이 있다. 나 혼자 달나라의 외계인이 된 듯, 끝없이 어두운 늪에 빠진 ‘고독한 군중’이 된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이 고독은 인종도, 나이도, 신분도. 모든 것을 초월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한국인이든, 영국인이든. 하물며 알래스카인이든. 타인과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사회인이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공허함. 김씨 표류기에는 언어와 문화를 관통하는 이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럼에도 외국 시청자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낯설게 느껴질 부분들도 분명히 있다. 대표적으로는, 자청해서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는 ‘은둔형 외톨이’ 여주인공과, 이 모든 일들의 뒷배경인 한국의 ‘경쟁사회’가 있다. 근사한 경제개발과 한류. 그 이면에 있는 치열한 경쟁의 극단성과, 그로 한국인들이 느끼는 피로감을 이해한다면, 인물들이 영화 초반에 지닌 힘겨움이 더 와닿을 것이다. (김씨의 구출요청을 단순한 장난 전화로 여기는 구급대원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영화 중반부에서 여자는 짜장면을 향한 김씨의 갈망을 알게되고, 용기를 내어 중국집에 전화해서 배달을 시킨다. (여기서 오리배를 타고 짜장면을 무인도까지 배달하는 명장면이 탄생한다.) 하지만 K-배달원의 노력이 무색하게, 김씨는 단무지만 받고 짜장면을 그대로 돌려보낸다. (군만두가 서비스로 왔는데도 말이다.)


뿌리가 무성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이해한다면, 이 거절이 얼마나 막중한 의미를 지녔는지 알 수 있다. 모두가 전력 질주하는 사회가 고향인 김씨가, 느림의 미학을 알게되고, 자신이 일원이었던 사회의 흐름을 역행하는 법을 배운 것을. ‘고독’이라는 이름의 태풍, 그의 눈에 서서 고요를 즐기는 법을 배운 것을…


섬에 처음 도착해 탈출을 꿈꾸던 김씨는 모래에 글씨를 써서 도움을 청한다 (HELP). 하지만 자신의 현실을 직면하며 태풍의 눈 속으로 들어온 김씨는, 세상에 던지는 자신의 메시지를 바꾼다 (HELLO). 괴로운 울부짖음을 편안한 인삿말로 바꿔준 것은 바로 ‘짜장면’이다.


시나리오를 보면, 두 캐릭터는 그저 ‘남자’와 ‘여자’로만 표기되어있다. 그렇듯 김씨는 ‘나’이고, ‘너’이다. 김씨는 한국에 사는 김봉구 씨이고, 영국에 사는 김미셸 씨이기도 하다. (알래스카에 사는 김상덕 씨이기도 하겠지…)


무말랭이의 ‘짜장면’처럼. 은둔형 외톨이의 ‘김씨’처럼. 척 놀란드의 ‘윌슨’(윌~쓰은!!!)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필연적인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찾을 의무가 있다. 그 필연이 피부색을 넘고, 언어와 문화를 넘어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때론 각박하고 막막한 우리들의 일생을 관통하는 무언가. 그것을 찾을 용기를 주고 우리를 응원해주는 영화, 김씨 표류기이다.


‘인간들은 바다를 떠다니는 섬 같다.. 겉 보기에는 동 떨어져 있지만, 수면 밑을 보면 모두 연결되어 있다.’

- 윌리엄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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